서울 나들이 _ 종로 3가
I. 바쁜 명절
1) 15년 전
"어머니 몇 시까지 오신대? 내일 제사 지내려면 장도 봐야 하고…"
"장모님 댁은 제사 끝나고 바로 가자. 얘들 젖병이랑 기저귀는 내가 챙길게."
그땐 명절이면 당연히 제사였고, 아이들 짐은 늘 한가득이었습니다.
2) 5년 전
어느 순간, 제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죠.
"엄마, 이제 아버지 제사는 기제사만 지내고… 명절은 식사만 하면 안 될까?"
그렇게 명절 제사는 ‘식사’로 조용히 바뀌었고,
우리 집 명절 풍경도 조금씩 달라졌습니다.
3) 3년 전
장인·장모님은 이제 추모공원에서 뵙게 되고,
아이들에게 말하면,
"아빠, 엄마랑 가까운데라도 갔다 올래?"
"나 친구들이랑 약속 있는데…"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도 점점 줄어들더군요.
II. 그리고 맞이한 이번 추석
1) 먼 곳은 차가 막힐 것 같고
추석 연휴 이틀째.
특별히 할 일이 없고, 멀리 가기도 애매한 그런 하루였습니다.
"서울이나 한번 갈까? 저번에 홍인지문 달릴 때 보니까 광장시장도 가깝고…
괜찮으면 도성길 조금 걸어도 되고."
"그러자. 연휴라 차 막힐 것 같은데…"
"아, 상이네 연락 한번 해봐. 형님하고 같이 보면 좋겠는데?"
"3시 30분에 종로3가에서 보자고 하네."
2) 강 남쪽과 다른 강 북쪽
게임만 하는 아이들을 뒤로 하고,
저와 아내는 동대문역에 도착했습니다.
아내 직장은 강남,
저 역시 학생 때 강남에만 있어
강북은 늘 낯설었습니다.
강남은 큰 대로를 중심으로 맛집이 늘어서 있고,
골목을 벗어나면 한적해지는 느낌인데,
동대문에서 종로3가까지 걷는 길은 완전히 달랐습니다.
동대문역 근처,
서울에서 이렇게 저렴해도 되나 싶은 음식점들.
광장시장에 도착하니
사람이 너무 많아 앞으로 나아가기도 힘들고,
유명한 가게 앞에는 20미터 넘게 줄이 늘어서 있고…
시장을 빠져나오면 바로 아래에 청계천!
TV로만 보던 곳을 이렇게 길게 걸어보긴 처음이었습니다.
더운 날씨에 등에서 땀이 줄줄 흘렀지만,
그게 또 연휴의 한 장면처럼 느껴졌습니다.
오랜만에 아내와 서울 구경을 했습니다.
III. 왠지… 결혼 전의 느낌
1) 가끔 했던 모임
상이란 친구는
결혼 전, 지금 아내와 함께 자주 만났던 친구입니다.
그때는 셋이서 참 자주 어울렸죠.
그러다 상이는 지금 형님을 만나 결혼하고,
저도 지금 아내와 결혼하고,
아이들이 비슷한 나이라
가족들끼리 몇 번 모임을 갖기도 했지만
시간이 지나며 그것도 자연스럽게 줄어들었습니다.
모든 모임에는 늘 “아이들과 함께”였는데…
그게 당연했던 시절들.
2) 1차가 끝나고, 2차에서
오랜만에 편안한 얼굴들.
기분이 오르는 2차쯤 되니 제가 말했습니다.
"형님, 3차 가시죠!"
그렇게 들뜬 마음으로 종로 골목을 걷고 또 걷고,
술집과 골목 사이를 떠돌다 보니 어느새 밤.
문득 주변을 둘러보니…
아이들도 없고,
시계도 보지 않고,
그저 마음 가는 대로 걷는 우리만 있었습니다.
3) 그렇게 다시 찾아온 연애 시절
바쁘기만 했던 명절은
언젠가부터 여유로운 연휴가 되었고,
아이들은 각자 바쁘고,
우리는
다시 “여자친구와 남자친구”가 된 둘처럼 서울을 걸었습니다.
그리고
언제 만나도 어색하지 않은 친구.
문득,
결혼 전 그 시절로 돌아온 듯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나이가 들수록 ‘해야 하는 역할’은 많아지고,
몸은 다치면 오래 가는 나이가 되었지만,
이상하게
문 아래 잠들어 있던 감성들은
아직도 20대 그대로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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