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기 _ 인터벌 8회
I. 달리는 사람의 필수 사항
어제 오후 4시부터 7시 30분까지, 정말 숨 돌릴 틈 없이 움직였습니다.
"대현(둘째) 오늘 치과 5시 예약이야."
"어, 내가 데려다 줄게."
둘째에게 전화를 걸어 말했습니다.
"아빠 4시 30분까지 집 도착할 테니까 밖에 나와 있어."
사무실을 막 나서려는데, 그 타이밍에 업체에서 제품 문제로 전화가 옵니다.
꼭 바쁠 때만 나타나는 신호들처럼.
어찌저찌 해결하고 급하게 우체국으로 향합니다. 가는 길마다 신호는 왜 그렇게 다 걸리는지요.
우체국에서 물건 접수하고 나가려는데, 제 차 앞에서 한참을 비켜주지 않는 분까지…
4시 30분까지 3분밖에 안 남았는데도 말이죠.
간신히 시간 맞춰 둘째를 픽업해 치과에 데려다 주고, 치료가 끝날 때까지 진을 빼듯 기다렸습니다.
치료가 끝나자 바로 첫째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진유야, 아빠가 10분 안에 도착하니까 전화하면 바로 내려와. 홍익돈가스 가자."
"나 오늘 도수치료 받는 날이라 병원 가야 하는데…"
"아직 시간 있잖아. 밥 먹고 아빠가 데려다 줄게."
"알았어."
시간 아끼려고 차 안에서 메뉴까지 정해두고, 6시 10분 도착하자마자 외쳤습니다.
"돈가스 하나, 생선가스 하나, 볶음짬봉우동 하나, 그냥 우동 하나요!"
‘6시 30분까지는 먹어야 7시 30분까지 종합운동장 갈 수 있는데… 아, 오늘도 늦겠다.’
서둘렀음에도 6시 40분에 겨우 계산을 하고 나왔습니다.
둘째를 집에 데려다주고, 첫째를 의왕 시대병원에 내려주려고 가는 도중 또 업체 전화.
통화하느라 첫째와 인사도 못 하고 내리게 했습니다.
다시 와이프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어디야?"
"인덕원역."
"내가 범계역으로 갈게."
"너 운동 간다며, 그냥 와."
"진유 병원 데려다 주고 가는 길이라 괜찮아."
집에 도착하니 7시 25분.
"애들 병원 픽업하고 밥까지 챙겼어. 나 운동 갔다 올게. 끝나고 밥 먹고 올게."
"오늘도 취해서 들어오려나?"
"많이 취하진 않잖아."
"너무 늦지 마."
"응."
달리는 사람에게 ‘일과 육아와 약속 사이의 조율’은 필수 코스입니다.
II. 그렇게 얻은 수요일 인터벌 훈련
1) 운동장까지 뛰어가며
옷만 갈아입고 슬리퍼와 여벌옷을 챙겨 집을 나서니 딱 7시 30분.
가방 한 손에 들고 천천히 뛰어 운동장에 도착해 평중마 짐꾸러미에 가방을 내려놓습니다.
‘운동장 돌다 보면 만나겠지.’
그 생각으로 조깅주를 시작합니다.
오늘은 반드시 8회전 인터벌을 가야 한다는 생각에 몸풀기부터 진지합니다.
- 호흡은 코로, 차분하게
- 발은 최대한 조심조심, 삐끗하지 않게
- 자세는 부드럽고 안정적으로
- 주변에 여성분들 많은 동호회에도 눈길 한 번 안 주고
오로지 내 몸 상태만 체크하면서 뛰었습니다.
2) “어, 정팀 와 있었네?”
5km를 채우고 나서야 회장님, 주봉 형님, 고문님을 뵈었습니다.
"바로 인터벌 갑니다. 뛰었어요?"
"네, 집에서 뛰어와서 5km 채웠어요!"
지난번처럼 화장실에서 머리를 적시고,
유격훈련 앞둔 ‘155번 올빼미’의 비장함으로 운동장에 다시 섭니다.
3) 비와 당신
1라운드, 2라운드… 서서히 비가 내리기 시작합니다.
조깅주였다면 ‘비와 당신’을 들으며 감성 씹어먹고
막걸리 집으로 향했겠죠.
하지만 인터벌 중엔 감성이고 뭐고 없습니다.
조교님 고함 소리에 눈도 못 마주치고,
"자~ 이제 5바퀴 끝나면 6회전이에요! 다들 화이팅!"
열외될까 무서워,
입은 벌어지고, 몸·다리·숨은 따로 놀고,
그렇게 7회전까지 버텨냈습니다.
4) 마지막 라운드
600m. 운동장 한 바퀴 반.
머릿속에서 운동장을 잘게 쪼개며 달립니다.
- 시작점 → Round 끝나는 지점
- 직진 구간 끝나는 지점까지
- 다시 Round
- 다시 직진
한 바퀴 400m를 끝내고 남은 200m.
라운드 코스에서 회장님 발이 점점 멀어집니다.
‘따라가야 하는데… 마지막을 망치고 싶지 않은데… 아, 죽겠네.’
마지막 100m 직진.
지난번 써먹었던 비장의 무기를 다시 꺼냅니다.
‘스물까지만! 하나… 둘… 셋…’
회장님 발끝이 코앞에 다가올 즈음,
마지막 인터벌이 끝났습니다.
III. 목 마른 사슴에게 필요한 건… 수다
처음엔 훈련 끝나고 회장님과 막걸리 한 잔이 부담스러웠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그 시간이 기다려지기 시작했습니다.
힘든 훈련을 잘 견뎌내고 나면,
- 오늘 달리기 이야기를 나누고 싶고
- 같이 땀 흘린 사람들과 웃고 싶고
- 시원한 맥주 한 잔이 전하는 ‘아… 살겠다’는 느낌이 너무 좋고
그래서 슬쩍슬쩍 눈치를 보게 됩니다.
‘오늘 맥주 한 잔… 없나요?’
수다에 목 마른 사슴처럼,
그 시간을 기다리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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