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촌중앙마라톤 2024년 송년모임

 


 

우리는 늘 그 자리에, 이웃 사촌 이야기

 

I. 이웃 사촌

1. 집에 가기 전, 반드시 거쳐야 했던 정자나무

집에 들어가기 전, 멀리서부터 정자나무 아래 아주머니들이 계신지 살피는 게 습관이었습니다. 혹시라도 계시기라도 하면 마음속으로 중얼거립니다.

‘아… 곧 심판대에 오르겠구나.’

"누구 집 아들 이번에 무슨 사고쳤다더라?"
"어제 그 집에서 크게 싸우던데…"

정자나무에 가까워질수록 아주머니들 표정부터 슬쩍 살피고, 애써 밝은 척, 큰 목소리로 인사합니다.

“안녕하세요!”

그러면 아주머니들도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태연하게 한마디 툭 던지십니다.

“어, 그래!”

가끔 친구들끼리 돌아다니다 보면 꼭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야, 너희 엄마 거기 좀 앉지 말라고 해라. 무서워서 지나가겠냐?"
"나도 거기가 제일 무서워…"

정자나무는 우리에게 공포의 대상이었지만, 농번기에는 서로 품앗이도 하고, 마을 잔치도 열리고, 경사가 있어도, 상을 치러도 온 동네가 함께 모이던 곳이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그 시절 우리에게 정자나무는 무서운 심판대이면서도, 따뜻한 이웃사촌의 상징이었습니다.

 

2. 아파트

결혼 후 아파트에서 살게 되었는데, 층간소음 말고는 이웃과 마주칠 일이 거의 없더군요.

1987년 공익광고에서 보던 장면처럼, 요즘 아파트 풍경은 단절된 이웃이라는 말이 딱 맞는 것 같습니다.

부모님 세대처럼 이웃들과 막걸리 한 잔 기울이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모습은 이제 1988 덕선이가 기억하는 추억 속에만 남아 있는 것 같고요.

굳이 지금 시대의 ‘이웃사촌’을 찾자면, 아파트 옆집보다는 직장에서 만난 동료들이 현대판 ‘이웃이자 친구’가 아닐까 싶습니다.

 


 

II. 우리는 늘 그 자리에…

1. 한적한 시골 동네처럼

한때는 사람들로 북적이던 평중마였는데, 세월이 흐르며 떠난 분들이 많아지면서 어느새 한적한 시골 마을처럼 변해버렸습니다.

그래도 그 사이를 묵묵히 지켜주신 회장님, 고문님, 하늘님이 계셨습니다.

가끔 마라톤 대회에서 반가운 얼굴들을 마주하고, 대회가 끝나면 또 다음 대회를 기약하고… 그렇게 우리의 마을은 끊어질 듯 이어져 왔습니다.

근저리에 애주가와 평마 큰 동네가 있지만, 아직 행정구역 편입을 반대하시며 어르신 세 분이 지키고 계신 작은 평중마.

그 사이로 새로운 이웃들이 하나둘 들어왔습니다.

  • 1년 전, 젊은 청년 꼬미노님이 이사를 오셨고,
  • 추운 겨울, 이사 오시다 다쳐 조금 늦게 합류한 마초님,
  • 눈이 펑펑 오던 날 이사 와서, ‘짐 싸고 도망갈까?’ 잠시 고민했던 저,
  • 얼마 지나지 않아 세련된 복장의 도시 남자 모드리치님,
  • 이사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대회 때 다쳐 한동안 못 나오셨던 모닝빵님,
  • 귀촌 후 이장님께 끌려(?) 입주하게 된 빌리언님,
  • 원래 농사짓던 분이라, 참가하실 때마다 날아다니시는 주봉형님.

형편이 되지 않아 떠나신 분들도 계시지만, ‘동네가 살기 좋다’는 소문이 났는지, 브라운님, 상미님, 여름하나니님도 이 조촐한 동네에 자리를 잡으셨습니다.

 

2. 송년회

주민이 많아지면서, 얼마 전에는 송년회도 열었습니다.

멀리 계셔서 마음으로 참석해 주신 겨자선배님, 상수선배님,

저 멀리 유학 중이라 몸은 떨어져 있어도 마음만큼은 함께했을 분들도 떠올라 미소가 지어집니다.

이사 후 자리 잡느라 정신없어서 이번에는 참석하지 못한 분들도 계시고, 이제 막 이사 와서 차근차근 자리 잡고 계신 분들도 계십니다.

몸과 거리가 멀어 마음만 보내주시는 선배님들도 계시죠.

하지만 이장님 말씀처럼,

"천천히 오시면 됩니다."
"우리는 늘 그 자리에 있으니…"

그 말이 이 작은 평중마 동네를 가장 잘 설명해 주는 한 문장이 아닐까 싶습니다.

 

댓글

이 블로그의 인기 게시물

이런 회사라면 미리 떠날 준비를 하세요

🌱 벤처 초기 멤버, 회사는 성장했지만 그 댓가는,,,

눈치보는 야근 _ 잃어버린 것들과 뒤늦은 깨달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