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기를 포기하려다

I. 달리기를 포기하려다…

1. 혼자만의 다짐

와이프가 어느 날 한마디 하더군요.

"너 요즘 잘 때마다 끙끙 앓어. 너무 무리해서 뛰는 거 아냐?"
"며칠 지나면 괜찮아질 거야."

최근 두 번의 하프 기록이 1시간 55분.
힘들게 뛰어 들어온 기록이고, 지금 제 수준이 딱 이 정도였습니다.

그러다 우연히 작년 4월 행복한 가게 마라톤 기록을 보게 됐습니다.
1시간 44분.

부상으로 제대로 달리지 못한 기간이 있었지만,
그 기록을 보자 스스로에게 실망감이 컸습니다.

전 직장 지인들은 달리기 시작한지 1년이 되기도 전에
5분 초반을 넘어서 4분 후반대를 달리고…

그런 인스타를 보니
‘달린다’는 말을 꺼내기도 부끄럽더군요.

뒤처진 느낌이 싫어
6주 전부터 주 5회, 15km 달리기를 시작했습니다.


2. 사라지지 않는 근육통과 신경 쓰이는 무릎

3주쯤 15km를 채워갈 때쯤 생각했습니다.

‘이제 적응했으니 거리를 늘려야 하는데…
무릎 아픈 건 그렇다 치고, 이 근육통은 뭐지?’

15km가 슬슬 편해지면 페이스도 올라오고,
‘이제 거리 늘릴 때다’라는 느낌이 와야 하는데…

근육통은 줄지를 않고,
속도도 그대로고,
거리를 늘릴 자신도 안 생기고.

‘계속 뛰면 괜찮아지겠지.’
그렇게 2주를 더 달렸습니다.


3. 달리기를 그만둬야 하나?

2주 전 수요정모 때, 회장님과 베네님과 자유공원을 달렸습니다.
마지막 바퀴를 빠른 페이스로 돌았는데…

언덕까지는 힘겹게 따라갔지만,
내리막에서 두 분의 속도를 전혀 따라갈 수 없더군요.

내리막이면 다리만 굴리면 되는데…

그날 끝나고 잠시 멍해졌습니다.

‘지금 상태로 마라톤에 도전하는 게 맞나?’


4. “그만 달리자”

일요 정모엔 참석했지만,
늘지 않는 실력 때문에 마음은 점점 무거워졌습니다.

월요일, 와이프가 물었습니다.

"오늘은 운동 안 가?"
"그냥… 좀 그만 달릴까 생각 중이야. 당분간 쉬려고."

목요일에는 차라리 근력운동이라도 해보자며 헬스장에 갔습니다.

근력운동을 마치고
‘5km만 천천히 뛰자’ 하고 2km쯤 지났을 때
와이프가 범계역에 도착했다는 전화가 왔습니다.

평소 같았으면
“나 운동 중이야”라고 했을 텐데…
그날은 왠지 모르게

“범계역으로 갈게.”

라고 하게 되더군요.


II. 달리기가 좋긴 좋더군요

1. 충훈고 벚꽃

개나리는 초등학교 때 집에 오던 그 무료한 한가로움이 떠올라 좋고,
벚꽃은 대학 시험기간마다 만개해
‘편안한 마음으로 보고 싶다’는 갈증 때문에 기다리게 되고,
라일락은 결혼 후 처음 맡았던 향이 잊혀지지 않아 기다리게 되고…

충훈고 벚꽃거리가 문득 떠올라
오랜만에 그쪽으로 천천히 뛰어가 봤습니다.

별 생각 없이 천천히 가는데…
점점 살아나는 몸의 감각이 참 좋더군요.

땀이 나면서 작아졌던 눈도 커지는 것 같고,
둔탁했던 머리도 맑아지고.

‘달리기가 좋긴 좋네…’


2. 요놈의 무릎…

6주 동안 뛰면서
‘이제 실력이 올라오겠지’ 기대했는데
그 예상이 산산조각 났습니다.

‘무릎 때문에 자세가 안 나오고,
그러다 보니 힘으로 달려서 근육통이 생기는 건가?’

‘풀코스를 생각하는 게 맞나?’
‘달리기는 계속 하고 싶은데…’

무릎 때문에 올라오지 않는 실력에 지쳐 있을 무렵
겨자 선배님이 했던 말이 떠올랐습니다.

"산악 달리기는 여러 근육을 같이 써서 상대적으로 덜 다쳐요."

달리고는 싶은데,
풀코스 생각하면 무릎 때문에 자꾸 실망하게 되고…

산악 마라톤 대회를 알아볼까?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III. 행복한 가게 마라톤

1. 그냥 운동한다 생각하자

몇 번 나가본 하프 코스기도 하고,
열심히 해봤자 1시간 55분 정도.

‘그냥 주말에 운동한다 생각하고 뛰자.’

대회 전엔 긴장도 없고 설렘도 없고…
아무 생각 없이 범계역으로 출발했습니다.


2. 출발 전

행복마라톤 사회자인 겨자 선배님이 외칩니다.

"5, 4, 3, 2, 1. 출발!"

2:30 풍선 뒤에서 출발했는데
어쩌다 하프코스 거의 맨 뒤에 서게 되었더군요.

그리고 바로 깨달았습니다.

‘아… 이 페이스… 2시간 30분 풍선이네.’

한참을 사람들 사이를 피해 앞으로 나아가다가
2:00 풍선이 보이면서 병목이 풀렸습니다.


3. 생각보다 나쁘지 않은 페이스

혼자 달릴 때는 2km 이후
5:40~5:30으로 들어가는데
그 페이스도 사실 편한 건 아니었습니다.

근데 이날은 거의 생각 없이 달렸는데
1km 이후부터 5:12 페이스.

‘힘들진 않은데? 생각보다 빠르네.’
‘물은 꼭 챙겨 먹자.’

급수대마다 물을 마시고
무릎에 무리 가지 않도록 엉덩이 근육을 의식하며 달렸습니다.

자세에 집중하다 보니
몸에 무리도 덜 가고, 숨도 가쁘지 않았습니다.

특정 구간을 빼면
대부분 5:10 페이스로 반환점을 돌았습니다.


4. 반환점 이후

반환점에서 물도 마시고, 음악도 다시 맞추고,
파워젤도 먹고 있다 보니
11km에서 페이스가 5:25까지 떨어졌습니다.

‘어… 떨어지기 싫은데. 자세 좀 더 신경 쓰자.’

그러자 12km에서 다시 5:04,
13km에서 4:51.

‘어… 4분대네?’


IV. 그때 그 기분

1. 자연스럽게 들어간 4분대

이 순간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모르겠습니다.

6주 동안 15km를 달리면서
아마 이 순간을 기다렸던 것 같습니다.

억지로 힘으로 찍어 넣는 4분대가 아니라,

‘힘은 들지만 숨은 괜찮고… 달릴 만한데…’
싶을 때

‘어? 4분대네?’

이 느낌.

부상 이후 처음이었습니다.
7개월 만에.


2. 풀마라톤 도전?

행복마라톤 전에는
‘풀 말고 산악 마라톤으로 가자’라는 생각이었는데

왠지 도망가는 느낌도 들고,
그렇다고 다치지 않고 달릴 자신도 없고…

아직 마라톤 초보라
finish line에 목매고 있어서
다치더라도 그냥 갈 것 같고…

망설여지네요.

그래도 우선은,

지금부터 꾸준히 달려보고
그때 다시 결정하는 게 맞는 것 같습니다.

달리기가 뭐라고…
이렇게 긴 시간 동안
‘달릴까 말까’를 고민하고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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