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리기를 다시 시작하게 만든 어떤 날

올 4월 달리기를 포기하려는 때가 있었습니다.
몸보다 마음이 먼저 무너지는 느낌이랄까요.

어느 날 와이프가 그러더군요.
“너 요즘 잘 때마다 끙끙 앓아. 너무 무리하는 거 아니야?”
저는 늘 하던 대로 “괜찮아질 거야”라고 말했지만,
그 말이 저 자신에게도 잘 안 들리던 시기였습니다.

최근 하프 두 번 기록이 1시간 55분.
예전 첫 하프 기록 1시간 44분을 떠올리면
마치 다른 사람 얘기처럼 멀게 느껴졌습니다.

전 직장 지인들은 1년도 안 돼 4분대 후반을 달리고 있고,
그걸 보면 괜히 마음 한쪽이 툭 떨어졌습니다.
‘달린다’는 말을 꺼내기도 머쓱해지고요.

그래서 6주 동안 주 5일, 15km를 달렸습니다.
뭔가라도 달라지겠지 싶어서요.
하지만 달라진 건 근육통이랑 무릎 통증뿐이었습니다.


달리기를 내려놓을까 했던 날들

어느 날은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처럼 달리면, 풀코스는커녕 그냥 달리기도 힘든데…?’

그 말을 와이프에게도 털어놨습니다.
“그냥… 그만 달릴까 하고 있어.”

목요일엔 근력운동을 하러 갔고,
운동 후 5km만 뛰어보자고 트레드밀에 올랐습니다.
2km쯤 지났을 때, 와이프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평소 같았으면 “운동 중이야”라고 했겠지만
그날은 이유도 없이

“그쪽으로 갈게.”

라고 말하고 있더군요.
제 마음이 이미 달리기에서 멀어진 걸 그때 알았습니다.


다시 느껴진 달리기의 맛

며칠 뒤, 문득 안양천 충훈고 벚꽃길이 떠올랐습니다.
아무 생각 없이 그 길을 향해 천천히 뛰었습니다.

땀이 나고, 숨이 정리되고, 머리가 맑아지는 순간이
참 오랜만이었습니다.

‘아… 달리기, 좋긴 좋지.’
그 한마디가 슬쩍 떠올랐습니다.

하지만 무릎은 여전히 찌릿했고,
자세는 계속 흐트러졌고,
실력은 기대만큼 올라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산악 마라톤까지 찾아봤습니다.
도망이든 대안이든, 뭐라도 붙들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작은 변화, 행복한 가게 마라톤

그러다 ‘행복한 가게 마라톤’을 뛰게 됐습니다.
크게 기대하지 않고, 그냥 주말 운동한다는 마음으로요.

그런데 그날은 달랐습니다.
1km 지나자 5:12가 나오더군요.
혼자 뛸 때는 늘 버거웠던 페이스였는데
그날은 호흡도 괜찮고, 다리도 따라줬습니다.

반환점 지나며 힘이 잠시 빠졌지만
자세를 다시 잡자 페이스가 올라왔습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 4:51.

억지로 밀어 넣은 속도가 아니라
자연스럽게 올라간 페이스였습니다.

부상 이후 7개월 동안 잊고 있던 감각이
슬그머니 돌아온 순간이었습니다.


다시 풀코스를 떠올리며

그때 잠깐이었지만, 참 좋았습니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풀코스가 다시 마음에 떠올랐습니다.

하지만 바로 망설임.
달릴 자신은 아직 없고,
그렇다고 달리지 않을 자신도 없고…

그래서 요즘은 이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풀코스 욕심내지 말고,
그냥 꾸준히 달려보자.
잘하려 하지도 말고,
도망가려 하지도 말고,
지금 몸과 마음이 허락하는 만큼만.

달리기가 뭐라고 이렇게 오래 고민을 하나 싶다가도
다시 신발을 신는 제 자신을 보면
달리기가 좋긴 좋은가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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