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2025의 게시물 표시

49세 퇴직, 이직이 사라진 뒤에 남은 선택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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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승전 치킨집, 웃지 못할 현실입니다. 함께 근무하던 해외영업 팀장님이 퇴사 후 치킨집을 연 지 두 달이 지났습니다. I. 직장인의 선택지는 늘 두 가지뿐이었습니다 대부분의 직장인은 비슷한 패턴으로 살아갑니다. 입사하고, 적응하고, 버티다가 이직을 고민합니다. 그리고 다시 같은 고민을 반복합니다. 매달 받는 급여는 늘 빠듯했고, 투자할 만큼의 여유 자금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선택지는 자연스럽게 하나로 좁혀졌습니다. 지금 회사에 남을 것인가, 더 나은 회사로 옮길 것인가. 개인 사업은 늘 먼 이야기였습니다. 같은 사무실, 옆자리에 앉아 있던 동료가 “사업을 해보려고 합니다”라고 말하기 전까지는 말입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에도 대부분은 그것을 무모한 선택으로 바라봅니다. 그러나 지금 돌아보면, 그 판단의 상당 부분은 냉정한 분석이 아니라 막연한 두려움이었습니다. II. 45살이 되면, 이직은 기회가 아니라 리스크가 됩니다 40대 중반에 접어들면, 이직은 더 이상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사항이 아닙니다. 새로운 조직에 다시 적응해야 한다는 부담, 기대만큼 성과를 내지 못하면 곧바로 평가 대상이 된다는 압박, 결국 “직장이라는 게 다 거기서 거기 아니냐”는 체념이 뒤따릅니다. 이런 생각들이 반복되다 보면 어느 순간 이직이라는 선택지는 조용히 사라집니다. 그리고 그제야 처음으로 이런 질문을 하게 됩니다.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은 없을까. 이미 늦었다는 걸 알면서도 그 질문 말고는 더 ...

직장에서 공정함을 기대했던 나의 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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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년 직장 생활을 마치고 돌아보면, 후회되는 것들이 몇 가지 있습니다. 그 중 가장 큰 착각은 이것이었습니다. “회사는 공정할 것이다.”   I. 일하지 않아도 승승장구하는 자들 1. 무능력하게 비춰지는 나 직장 생활 동안 앞뒤 재지 않고 맡은 일을 묵묵히 해냈습니다. 그리고 ‘열심히 하면 윗분들이 알아주겠지’라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습니다. 팀장 회의에서 누군가 “이런 식으로 진행 중입니다”라고 말하면, 그 일을 실제로 한 ‘나’는 사라지고, 그 말을 한 사람이 일을 주도한 것처럼 인식됩니다. 반대로 문제가 생기면, “OO에게 그렇게 하면 문제 될 수 있다고 했는데…” 이번엔 OO, 실명으로 등장하고, 본인이 결정한 사항에 대해 책임은 나에게 전가됩니다. 그렇게 나는 잘한 건 없고, 사고만 치는 사람 이 되어 있습니다. 심지어 그 회의에 참석하지 않은 난 그 사실조차 모릅니다.    2. 자괴감 조직은 참 신기합니다. 일하는 사람은 죽도록 일해도 시간이 부족하고, 어떤 사람은 외근 간다며 골프 치고, 사무실 오면 인터넷만 뒤적입니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듭니다. ‘난… 뭐지? 이게 맞나?’   3. 몇 번을 이야기해도 변하는 건 없다 동료들은 그 사람이 어떤식으로 회사일을 하는지, 다 알고 있었고, 후임 중에는 맞서 싸운 사람도 있었습니다. 저도 몇 번이고 임원에게 말했지만, 돌아온 말은 이랬습니다. “너희들은 왜 그렇게 걔를 싫어하냐?” 사실을 말했을 뿐인데, 그 임원 관점에서는 그냥 ‘쓸모없는 이야기’가 됩니다. 결국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우리가 예민한 사람이 됩니다.   II. 지금 생각하면 1. 왜 회사가 공정할 거라 믿었을까? 어릴 적 한 선생이 자기 아들과 싸웠다고, 쉬는 시간에 들어와 작은 아이를 힘으로 짓밟던 일을 본 적 있습니다. 주변 교...

직장 회의 스트레스, 우리가 놓친 진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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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년 직장 생활을 돌아보면 가장 바보스러웠던 것 중 하나가, 토요일부터 출근 생각으로 불안해하며 주말을 낭비했던 것입니다. 도대체 뭐가 그렇게 불안했던 걸까요? 월요일 주간 회의 금요일 퇴근 후 주말 기분을 만끽하고 토요일 낮에도 그럭저럭 괜찮습니다. 하지만 토요일 밤이 되면 문득문득 ‘월요일 주간 회의’가 머리를 스칩니다. 토요일 늦은 밤 TV는 어느새 ‘나는 자연인이다’에 맞추어져 있고, 일요일 오후부터 '월요일 주간회의' 생각으로 얼굴이 굳어집니다. 몸은 5일 출근하지만, 스트레스로 주 6일 근무한지가 꽤 오래 되었습니다. ‘제발…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을 하면서 월요일 출근합니다. 뭐가 그렇게 두려웠던 걸까? 가만히 생각해 보면, 주간 회의 때 최악의 시나리오는 이런 말들이었습니다. “왜 일이 진척되지 않지? 실력이 이것밖에 안 되는 거야?" “이번 달 매출은? 도대체 뭘 하고 있는 거야?” 그 말들이 왜 그렇게 두려웠을까요? 취업·이직 준비하며 겪었던, 그 힘든 시간들이 다시 올까 봐 두려웠던 걸까요? 그런 말을 들었다는 사실 자체가 용납되지 않는 내 자존심 때문일까요? 어찌할 줄 몰라하는 내 모습을 바라볼 주변 시선이 두려웠던 걸까요? 상황 뻔히 알면서도 막말을 내뱉는 윗사람의 불합리함에 한마디도 못하는 내 비굴함 때문일까요? 회의가 두려웠던 진짜 이유 두려웠던 건 회의 자체가 아닌, 싫어했던 윗사람이 생각 없이 내뱉는 말, 그 말 속에 담긴 나에 대한 평가였습니다. 직장인 모두 알지만, 잊고 착각하는 게 있습니다. 이 직장이 평생 갈 것처럼, 싫어하는 그 사람도 계속 같이 있을 것처럼, 그 사람의 한마디가 내 삶을 크게 좌우할 것처럼 느끼는 착각입니다. 그 착각 속에서 지금 직장이 내 삶의 큰 부분을 차지하게 내버려두고, 그 사람 한마디에 내 하루가 무너지는 일이 반복됩니...

군포 10km 산악마라톤 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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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 "산을 뛴다고?"   기어다니던 아기가 힘들게 일어섰다가 주저앉듯이, 200미터를 가지 못하고 다시 걷던 시절. 라이트 형제의 비행기를 모두 미친짓이라 했듯이, "산은 등산하는 곳이지 뛰는 곳이 아님" 을 진리라고 믿고 살았습니다.  그 진리는 1년 전부터  "에이~~ 달릴 수 있어" 가설을 주창한 종찬슈타인님께서 깨버렸습니다.  II. 정모에 생각없이 오다보면     혼자 달릴때는 5km도 엄청 많이 달린거라 생각했는데, 정모에 몇 번 참석하다보면, 그 엄청난 5km가 준비 운동을 하는 조깅주가 되어 버립니다.  어영부영 아무 생각 없이 회원분들 따라가다 보면, 백운호수를 바라보면서 언덕도 올라갔다 내려오고, 10km를 넘게 뛰는 내가 됩니다.  가끔 종찬슈타인님께서 무리한 실험을 감행할 때가 있는데, 이 때 또한  "에이~~ 달릴 수 있어"  가설을 은근슬쩍 내세워 인생 처음으로 20km를 넘게 뛰는 피실험체가 됩니다.  군포 10km 산악마라톤 대회에서도, 우리는 피실험체가 되어, 종찬슈타인님의  "에이~~ 달릴 수 있어" 가설을 한번 더 증명했습니다.  III. 같이 달린다는 건 그 거리에 머물러 있을 나!!  그 속도에 머물러 있을 나!! 그러다 포기할 나!! 요걸, 더 멀리, 더 빠르게, 더 오래 달릴 수 있게 해주는 게 같이 달리기인 거 같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산을 뛰는 사람"이 되어 있었습니다. IV. 군포 10km 산악 마라톤 대회 기본 정보 군포시에서 5월말 혹은 6월초에 주최하는 무료대회며, 참가 자격은 특별히 없습니다.  대신, 지역 마라톤 동호회 위주로 배번이 교부되기에, 개인 참가자 분들은 많지 않습니다. 젊은 달리기크루보단, 마라톤 동호회 분들 위주라 나이때가 좀 있고, 60세이상 분들이 앞서가는 걸 보면서,,, 많은 반성을 하는 그런 대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