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고 후회하지 말자 _ 사장의 약속


I. 어디서부터 꼬인걸까?

끝나지 않는 업무, 결국 또 노트북을 챙긴다.  

얘들 밥 챙기고 설거지 하고, 빨래까지 어느덧 10시. 

그렇게 일을 시작하고,,,, 몸이 너무 좋지 않다.  새벽 1시. 

'내일 출근하려면,,, 자자' 


회사에서 실세고, 다들 내 월급이 엄청 높은 줄 안다. 

하지만, 정작 받는 월급은 같은 나이 때 대비, 같은 직급 대비 가장 낮다. 

'개발자가 아니라서?'

'유부녀라서?'


세무 사무소에서 10년 넘게 일했고, 이 회사에 와, 처음 업무는 회계와 자금이었다. 

근데, 인사도 넘어오게 되고, 총무 일도, 이제 영업 지원도 한다. 

각종 계약서, 계약 갱신일, 수금도 챙기고, 

매 회의 때마다 분기별, 전년대비 손익 계산 자료도 만들어야 하고, 

이젠 회사 홍보 자료를 유튜브로 만들라 한다. 


가장 스트레스는, 조용히 일 좀 하려 하면, 시도 때도 없이 사장님이 자료를 요청한다. 

오늘 해야 할 업무는 또 뒤로 밀린다. 

팀장이 된 후로는 '개발 회의는 내가 왜 들어가야 하는지? 영업 회의는 또 왜 들어가야 하는지?'

오늘 하지 못한 업무 때문에 또 노트북을 챙긴다.   


II. 그럼에도 은연중 기대하는 한 가지 

영업 이사는 20년 차, 나는 18년 이 회사에서 근무하고 있다. 

둘째 태어나기 전부터 봐왔던 사장님이다. 

항상 깔끔한 모습에 남을 배려하는 매너, 본인 가정을 최우선으로 하는 성실한 분이다. 

거래처 수금 독촉 전화로 힘든 시기도 있었지만, 그럼에도 직원 월급은 한번도 밀린 적이 없다.

회사가 안정화 되면서, 높은 급여로 외부 인원을 전무 혹은 상무로 채용하기 시작했다.

무언가 특별한 게 있을 줄 알았던 고액 연봉자들은 1년도 되지 않아 견디지 못하고 그만두었다. 

'차라리 있는 인원을 그 만큼 주지,,' 


작은 급여에 섭섭한 마음도 있었지만,  간간히 사장님과 이야기 할 때면, 

"두 친구는 내가 평생 데리고 갈게, 따로 생각하고 있으니까,,," 


휴가 때도, 심지어 어머님 장례식 때도 노트북을 켰 던 나다. 

그 모를 "따로 생각하고 있으니까"를 위해 회사 일은 무조건이었다.  

적어도,,, 

사람이라면,,,

그렇게 종종 얘기까지 했으니,,,

당연히 무언간 있을 거란 생각은 당연함 이었다. 


III. 회사가 팔렸다  

종종 이런 저런 회사 매각 미팅으로 자료를 만들었던 나였기에, 어느 정도 분위기는 알고 있었지만, 정말 회사가 팔렸다. 

인수한 회사의 법무팀도, 회계팀도, 인사팀도 내가 미팅했고 요청 자료 또한 바로바로 송부한다.

인수한 회사에서 이렇게 자료가 잘 관리된 회사는 없었다고 하고, 거기 담당자 일 잘한다는 얘기도 들린다고 한다. 

인수한 회사 상무님이 자료를 직접 보내라 했지만, 사장님께서 자기한테 먼저 송부하고 본인이 직접 본낸다고 한다. 실무자 미팅임에도 항상 사장이 배석한다. 

어느날 사장이 부른다. 

인수인계 하면서 전체 금액을 추산해 보니, 100억 가까운 가격에 회사가 매각 된 걸 알고 있었기에, 드디어 "따로 생각하고 있으니까" 에 대한 궁금증이 풀릴 수 있을 거란 기대를 했다. 

하지만,,,,

"인수한 회사에서 앞으로 oo부장 하는 일을 맡을 거야. 하지만 내가 oo부장은 어떻게든 다닐 수 있게할게" 

"그리고 그 회사 일하는 수준이 아주 높아, oo부장도 거기서 하는 만큼 수준 맞추어야 할 거야"


결국, 

"따로 생각하고 있으니까" 그 어떤 해명도 없었고, "계속 다닐 수 있게, 수준을 높여라????" 


IV. 퇴사 

더 이상 사장 얼굴을 보고 싶지 않았다. 

두 달 전에 통보했고, 몇 번의 만류, 때론 부드럽게, 때론 강압적으로, 때론 때를 쓰기도, 

한결같이, "건강이 좋지 않아서요. 죄송합니다." 

더 이상 엮이고 싶지도, 더 이상 말하고 싶지도, 더 이상 그 공간에 발을 딛고 싶지도 않았다. 

그 나마 두 달을 버틸 수 있었던 건, 같이 일했던 동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원래 후임을 뽑아 내 업무를 인수인계하라고 했지만, 채용되었던 경력자가 며칠 출근 후 그만 두었다.

시간이 흘러, 결국, 인수 회사의 관리팀에 내 업무를 인수인계 하기로 결정 되었다. 

인수한 회사의 상무님께서 한 달만 인수인계 기간을 갖자고 한다. 

'두 달 전 미리 말씀 드렸고 내 알바 아니다' 말하고 싶었지만, 그 상무님 또한 정치는 1도 참여하지 않는 그냥 일하는 상무님이라,,,거절하기 쉽지 않다.


"그럼 그냥 알바로 할게요. 대신 그 쪽 회사 말고, 여기 회사로 출근해서 인수인계 할게요" 

"알바로 하면 퇴직금도 정산되지 않는데,, " 

"그냥 더 이상 그 회사와 엮이고 싶지 않아서요" 

"알았어요" 


V. 인수 인계만 4개월  

집에서 거리가 멀긴 했지만, 특별히 큰 업무는 없었다. 

회계 담당할 담당자가 결정되고,  

인사 업무를 받을 담당자도, 자금도, 총무도 다 따로 결정되고, 계약서는 법무팀에서, 

회사 전반 애매한 영업 지원 업무 또한,,,때때로 설명해 준다.  

 

메인 업무 담당자가,,,

"아니 어떻게 이 많은 일을 혼자 다 했어요?"

"이렇게 루틴한 업무는 일도 아니에요. 때때로 요청하는 자료가 너무 많아서,,, 그게 일이죠" 


한 달이 끝나고, 상무님께서 "한 달만 더 부탁해요" 두 달이 끝나고, "한 달만 더요" 

세 달이 끝나가고, "한 달만 더요"  그리고 가끔 찾아오시는 상무님 

"별일 없죠?" 

"아 네,," 

"아 근데, 그 쪽 사장님 정말 왜 그래요?" 

"ㅎㅎ 뭐,,, 좀 그렇죠" 

그리고 익숙해진 그 회사 실세인 부장과 차장들. 어느덧, 주변 직원들도,, 알바인 나한테 인사를 한다. 


네 달이 끝나갈 때, 

"아직도 약간 불안한데, 지금 받는 돈의 50%에 하루 4시간씩 두 달  재택알바 가능할까요?" 

"이젠 담당자들이 혼자 해야죠. 전 여기까지만 할게요"


이렇게 길게 쓰는 이유는,, 마지막까지 날 가스라이팅한,,, 그 사장!!!

 "그리고 그 회사 일하는 수준이 아주 높아, oo부장도 거기서 하는 만큼 수준 맞추어야 할 거야"


돈을 많이 벌어서 사람이 변한 건지?

원래 그랬는데, 내가 본 모습을 보지 못했던 건지? 


그 사장의 "따로 생각하고 있으니까"만 믿고 18년을 노예처럼 일한 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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