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트라 마라톤 104km 완주 후
I. 다치기 전까지
이번이 처음 도전이었습니다.
예전 풀코스를 뛰어보고 다쳐본적이 있어서,
'과연 완주할 수 있을까? 제발 다치지만 않으면 끝까지 갈텐데,,,'
대회 전에도, 대회 당일에도 의심했습니다.
20km를 통과하면서 '다리기 벌써 무거운데 끝까지 갈 수 있을까?'
20~30km 구간에서는 페이스가 떨어지면서, '점점 무거워지는 건가?'
30~40km 구간에 산이 있었고, 평소 같으면 뛰었을텐데 걸어 올라갔습니다.
내려올때도 다리에 무리가지 않게 조심히 내려왔습니다.
무거웠던 다리가 풀리고, 컨디션도 괜찮아졌습니다.
40km 도착해서 약간 흥분되었습니다. '잘하면 완주할 수 있겠는데,,,'
40~54km 그 흥분이 독이 되었습니다. 오르막에 오버페이스를 했습니다.
올라갈때는 느끼지 못했는데, 내려오면서 오른쪽 발바닥이 아픈걸 느꼈습니다.
아픈 발바닥을 지면에 최대한 덜 닿게해, 왼쪽 발에 힘을 주니 그나마 달릴만 했습니다.
'언제까지 왼발이 버틸지?'
한번도 다쳐본적이 없는 왼발이기에,,, 괜찮을 거란 생각을 했습니다.
60km를 지나, 70km에 도착해 '잘하면 무리없이 finish line에 들어가겠는데'
마음속에 첫 도전 성공이라는 희망과 흥분이 올라왔고,
가족에게도 동호회분들에게도 나 자신에게도 "해냈다"는 말을 할 수 있을 거 같은 기분에
뛰면서 보이는 심심한 거리도, 가로등도 한없이 펼쳐진 도로도 그렇게 아름다울 수가 없었습니다.
그 기분에 도취되어, 530 페이스로 1km 넘게 달렸습니다.
버텨주던 왼쪽 무릎이 아팠고 더 이상 뛸 수 없게 되었습니다.
약간의 방심은 바로 결과로 오더군요.
그렇게 80km에 도착했고, 보급소 스프레이 파스는 이미,,, 없더군요.(개인용 스프레이 파스 필수템)
II. 90km까지 두시간 안에만 도착하자!!
대회 마감까지 5시간이 남았고,
90km까지 2시간안에만 도착하면, 어떻게든 남은 10km는 3시간안에 들어갈 수 있다는 생각이었습니다.
하프 이후부터, 울트라를 18번 뛰신 하늘님께서 동반주를 해 주셨고, 전 더 이상 뛸수 없었기에,
"하늘님 먼저 가세요"
"아니야, 같이 가 정팀"
"제가 부담스러워서요. 괜히 저때문에,,, 뛰지도 못하시고"
그러고 조금 떨어진 곳에서 쉬고 있었습니다. 다시 하늘님께서 오시고,
"정팀 같이 가"
"제가 방해만 될 거 같아서요.. 심적으로 너무 죄송스럽기도 하고,,"
"정팀이 뛸 수 있으면 뛰고, 걷고 싶으면 걷고, 나 신경쓰지 말고 그냥 가, 맞추어서 갈게, 내가 뭐 기록이 중요한 것도 아니고,,,"
"네,,"
제가 부담스러울까봐 하늘님께서 뒤에서 오셨고,,,,
제가 힘들까봐 버스 정류장에서 5분 알람 맞추어 놓고 잠시 쪽잠을 같이 자기도 하고,,,
하늘님께서는 뛸수있는 상황인데도 걷기에 몸이 식었고, 갖고 오신 바람막이를 입으셨습니다.(바람막이 필수템)
발바닥 물집은, 오른쪽 발바닥 통증과 왼쪽 장경인대 부상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걷는 것 조차 힘든 상황인데, 더 천천히 걸었다가는 90km까지 2시간 안에 들어올 수 없을 거 같았습니다.
"하늘님이 앞장서 주세요. 하늘님 걷는 속도에 맞추어야 2시간안에 들어갈 수 있을 거 같아서요"
고통을 참으며 한걸음 한걸음,,, 그 10km는 정말 끝도 없더군요. 90km 보급소는 가도가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삼성스마트워치는 80km에서 밧데리가 다해,, 지나가시 분들께 몇 번 몇 km인지 물었던 거 같습니다.
(삼성 스마트워치는 100km 울트라에 적합하지 않음)
그 와중에 뒤에서 저희를 제치고 힘겹게 가시는 분께서 큰 목소리로,,
"좋은 아침입니다"
왠지,, 저도 다음 울트라 때 꼭 한번 해보고 싶은 말이네요.
드디어 보이는 90km 보급소!!!
'남은 10km는 어떻게든 가겠지, 다행이다 2시간안에 들어와서'
III. 마지막 10km
"하늘님 이제 걷는 것도 힘들어서 조금 천천히 갈게요. 정말 이제는 먼저 가세요"
"알았어 정팀. 10km니까,, 괜찮을거야. 먼저 출발할게"
"같이 걸어 주셔서 너무 감사했습니다. 이따 뵐게요"
"이따 봐"
계속 걸을 때는 그나마 괜찮은데,,, 잠시 쉬었다 걸으면 그 통증이,,,그냥 한발 한발 옮기는 게 통증이었습니다.
갈때까지 간 상황이라, 매 순가 몇 km 남은지 알아야 그나마 희망을 갖고 걸어갈 수 있을 거 같았습니다.
밧데리가 남아있는 스마트 폰에 10km 걷기를 맞추어 놓고 출발했습니다.
저를 제치고 뛰어가시는 Runner 혹은 Walker. 어떤 고통을 참고 있는지!!
그나마 뛰고 있는 분들을 보면서,,'마지막까지 뛰는 분들이 승자구나!!'
조금씩 오던 비가 무섭게 내리기 시작했고, 챙겨간 우비를 입었습니다.(우비 필수템)
그때가 아침 8시정도였던 거 같습니다.
도로를 힘겹게 걷고 있을 때,,,
창문을 열어 "조금만 더 가면 되요. 화이팅 하세요" 외치시는 분도 있고,
차 불빛을 깜박이며, 경적으로 "빵빵빵 빵빵" 월드컵 응원을 해 주시는 분도 있고,
스마트 폰에서 1km마다 알람이 울리고,,, '이제 몇 키로 남았구나'
IV. Finish line
오후 5시에 출발해서 finish line에 도착한 시간이 9시 13분.
16시간 13분 26초.
화려함 뿌듯함 이런것들을 기대했는데,,,
비가와서 옷이 젖어서 그런거 같기도 하고, 고통스러워서 그런거 같기도 하고,
첫 번째로 드는 생각이,,,
'집에 가고 싶다'
다음으로는,,,
'아,, 그래도 완주했다고 말할 수 있게 되서 정말 다행이다'
'80km까지는 봐줄게'라고 했던 둘째한테도,
두달 넘게 농담반 진담반으로 "울트라 준비하면 언덕 몇 번 더 올라갔다 와야지" 하신 동호회 분들한테도,
아프면 바로 멈추라고 했던 와이프한테도,
그리고, 무모한 도전에 실패하지 않고 해낸 자신한테도,,
'완주해서 정말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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