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5살 사표 제출 후 심정과 주변 반응
사직서 제출 전
너무 힘들어 그만 두고 싶다는 생각에, 이력서를 올려 보았지만, 연락이 오긴 해도 45살에 과연 새로운 조직에 적응할 수 있을까? 두려웠습니다.
건설 현장에서 전기 일을 하고 계시는 큰 동서도 만나 일은 어떤지 여쭈어보기도 하고, '제발 사람 스트레스 없는 곳이면 어디든 좋다.'는 심정이었지만, 한번도 해 보지 않는 일을 한다는 게 자신 없었습니다.
억지로 출근하는 날들이 이어지고, 마음이 무거워지니 몸도 좋지 않았습니다.
정말 어떻게 될 무렵, 천운인지, 시작하는 회사에 입사가 결정되었습니다.
사직서 제출과 심정
갈 곳이 있다는 게 너무 좋았습니다.
물론, Start up이라 위험성도 있지만, '이 직장만 아니면 괜찮다'는 생각이었습니다.
본부장한테 퇴직 의사를 밝히고, 사이가 좋지 않았던 터라 만류는 없었습니다.
11년 동안 자리를 오래 비우면 안된다는 생각에, 한번도 해외로 여행 간 적 없는데, 퇴사 일에 맞추어 가족 여행도 계획하고, 인생이 참 좋게 느껴지던 때였습니다.
출근 부담도 없어지고, 마주치기 싫었던 본부장도 아무 느낌이 들지 않고, 이런 저런 회사 이야기를 하는 무리에 속해 스트레스를 풀던 저였는데, 다 의미 없게 느껴졌습니다.
다만, 저를 따라주고 저 또한 좋아했던 팀원들한테 미안한 마음이었습니다.
와이프의 우려
처음 두 직장이 Start up이었는데, 첫 회사에서 6개월치 급여를 못 받았고, 두 번째 직장에서도 간간히 월급이 밀렸습니다.
세 번째, 지금 회사는 상장사였고, 와이프가 그나마 안심했었는데, 다시 Start up에 간다하니,
"월급은 나오는 거야? 언제까지 네 월급 나올지 걱정해야 돼?"
그만두는 속 시원함도 있었지만, 새로 갈 회사에서 생각했던대로 일이 진행되지 않으면,,,힘들겠구나! 는 우려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당시에는 여기 더 있다가는 어떻게 될 거 같아, 그 우려까지 생각할 겨를이 없었습니다.
걱정은 뒤로하고, 잘 될 것만 생각했습니다.
직장 동료들 반응
사무실에 앉아 있으면, 회의 때만 보던 비슷한 연배의 사람들이 커피 한잔 하자고 찾아왔습니다.
"어디 갈 곳은 있느냐?"
"왜 그만 두냐?"
"나가서 뭐 할려고 하느냐?"
직장에서 40 중반이면, 아래 유형 중 하나가 되는 거 같습니다.
일도 잘하고 주말까지 투자해 윗 사람과 취미 활동을 하는 사람
- 회사 임원 되려면 이 정도는 기본인 거 같습니다.
- 윗 사람 입장에선, 아래 사람이기도 하지만, 나중에 본인 경쟁자일 수 있기에, 윗 사람이 가장 선호하는 유형은 아닙니다.
일은 보통이지만, 윗 사람을 아주 잘 모시는 사람
- 언제든 자기 편이기에, 윗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유형인 거 같습니다.
- 이런 분들이 임원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 자기보다 일 잘하는 사람은 위협이 되지만, 본인보다 떨어지는 실력이면 위협이 되지 않기에, 왠만하면 이런 분들을 진급시키는 거 같습니다.
일은 잘하지만, 윗 사람 비위 맞출 생각이 없는 사람,
- 직장 생활 힘들게 하는 타입입니다.
- 주말에 골프치면서 협의 되었던 내용을 모르기에, 혼자만 사태 파악이 되지 않습니다.
- 시간이 지나면서, 경쟁력이 떨어지고 회의시간마다 그냥 지나갈 수 있는 사소한 건에도 공격을 받게 됩니다.
커피 마시자고 찾아 오는 분들 대부분 일은 잘하지만 윗 사람 비위를 맞출 생각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일도 잘하고, 주말에 취미활동도 같이 하는 사람 또한 찾아옵니다.
하지만, 윗 사람 비위를 잘 맞추는 사람은,,, 그냥 마주쳐도 본체만체 하더군요.
찾아 오신 분들도, 무언가 탈출구가 있을 거란 생각으로 질문지만,,,별거 없음을 알면 대화는 주변 얘기로 끝납니다.
사장님과의 마지막 식사
사장님께서 저희 사무실에 들르셔서 봉지 커피를 손수 타 드시는데, 처음에는 어려운 마음에, "사장님 제가 타 드릴게요" 담소를 나누다 보면, 짧을 때는 30분, 길게는 1~2시간을 이야기 합니다.
몇 개월 흐르다 보니, 어려운 마음은 사라지고 사장님과의 이런 저런 이야기가 길어지면,
"사장님 제가 급하게 처리해야 할 일이 있어서요..."
"어 그래, 내가 시간을 너무 많이 뺐었지, 일해 정팀장"
개인적 생각이지만, 어쩌면 관계가 좋지 않았던 본부장 라인보다 더 좋은 황금 줄을 쥐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네요.
사직 제출 후에는 인간적으로 대해주시는 사장님께 미안한 마음에 계속 피해 다녔습니다.
어느날인가, 사장님께서 직접 제 자리에 찾아 오셔서, "정팀장 잠깐 이야기 할까?"
누구 때문에 그만 둔다는 말은 빼고, 퇴사 사유를 말씀 드렸고, 사장님께서도 더 이상 만류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렇게 사장님과의 마지막 대화가 끝난 줄 알았는데,,,퇴사 일 몇 일 앞두고 나가서 점심 먹자고 하시더군요.
어색한 점심 시간이 끝나고, '아 이제 끝났구나' 생각했는데, "커피 한잔 하고 가지"
'도대체 어떤 말씀을 하실려고 그러나?'는 생각으로 커피숍으로 갔고, 날씨가 좋아 밖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같이 앉아 있는 한 두 시간 동안, 사장과 직원이 아닌, 사업을 오래 운영하신 분 입장에서 소중한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어떤 일을 하던, 한번에 잘 되는 건 드물고, 끝나지 않을 거 같은 어두운 터널을 지날 때 일수록 더욱더 뚝심으로 고민하면서 밀고가야, 그 터널이 끝나. 중간에 힘들 때도 있겠지만 끝까지 끌고가는 힘이 중요해"
사장님께서 회사를 처음 시작했을 때의 어려움, 운이 좋아 성공했던 경험, 그리고 다시 암흑기,
'나는 이럴 때 이렇게 했고 " 저럴 때는 "또 이렇게 저렇게 고민해 보았고,,"
퇴사 의사를 확인한 직원을 다시 만나는 사장님도 드물 뿐더러, 다시 만난 자리에서 회사에 남을 생각이 있냐?는 질문 없이, 오로지 도움 되는 말씀만 하시는 사장님.
몇 차례의 구조조정과 사내 정치 속에 있다가, 순수하게 대해주시는 사장님의 마지막 배려가 아직도 고마움으로 제 마음속에 남아 있습니다.
그렇게 사직서를 제출하고
- 보기 싫은 정치도 사람들도 신경쓰지 않아도 된다는 시원함과 해방감
- 같이 일했던 팀원들에 대한 미안함
- 새로운 회사에서 잘 되어야 한다는 불안감
- 인간적으로 대해주시는 사장님에 대한 고마움
여러가지 감정들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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