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편] AI가 아니다 — AI를 든 김 대리가 날 대체한다




AI 시대 생존 에세이 · 5편

AI가 내 자리를 뺏는 게 아니다
— AI를 든 김 대리가 뺏는다

사라지는 '직업'과 살아남는 '능력'의 재정의

고백부터 해야겠다.

나는 지금 쓰고 있는 이 글을 AI로 초안을 뽑는다.

예전엔 두 시간 걸리던 작업이 20분이면 된다.
편하다. 빠르다.

그런데 그 편리함을 느끼는 순간, 동시에 이런 생각이 머릿속을 스친다.

지금 내가 하는 이 일을,
나보다 AI를 더 잘 쓰는 사람이 한다면
나는 필요한가?
이 질문이 무서운 이유는 답을 모르기 때문이 아니다.
어렴풋이 알고 있기 때문이다.
I 우리는 AI와 싸우고 있는 게 아니다

사람들은 자꾸 AI를 적으로 만든다.

"AI가 내 직업을 뺏을까?"
"AI가 내 자리를 없앨까?"

그런데 현실을 떠올려보면 AI가 직접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온 적은 아직 없다.

대신 이런 일은 실제로 일어나고 있다.

옆자리 김 대리는 AI로 보고서를 10분에 완성한다.

나는 밤 10시까지 남아 있고, 그는 정시에 퇴근한다.

팀장은 김 대리 얘기를 자꾸 한다.

김 대리가 천재라서가 아니다.
그가 든 도구가 내 맨손보다 수만 배 빠를 뿐이다.

맨손으로 사냥하던 사람이 활을 든 사람을 이길 수 없듯,
지금 이 싸움은 실력이 아니라 도구의 싸움이다.

AI가 내 자리를 치운 게 아니다.
AI를 먼저 집어 든 사람이 내 자리를 좁혔다.

우리의 진짜 경쟁 상대는 AI가 아니라 AI를 쓰는 사람이다.

II 직업은 남는다, 대신 업무가 해체된다

"어떤 직업이 사라질까?"

이 질문 자체가 조금 틀렸다.

회계사라는 직업은 사라지지 않는다. 디자이너라는 이름표도 당분간 유지된다.
다만 그 직업을 이루던 업무들이 조용히, 그러나 빠르게 해체될 뿐이다.

데이터 취합

표준 문서 작성

정해진 규칙에 따른 판단

이런 것들은 이미 AI가 더 빠르고 더 싸게 한다.

직업은 남는다. 대신, 직업 안의 업무가 먼저 잘린다.
해고는 한 번에 오지만, 업무의 해체는 매일 조금씩 온다.

그리고 웃긴 건, 그 변화를 가장 늦게 알아채는 사람이 바로 그 직업 안에 있는 사람이라는 거다.

우리는 지금까지 성실함이 정답이라고 믿어왔다.
엑셀 수식을 붙잡고 밤을 새우는 태도, 자료를 한 줄이라도 더 확인하는 습관.
그게 유능함의 증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클릭 한 번으로 결과물을 뽑아내는 김 대리 앞에서
그 성실함은 어느 순간 '가장 먼저 사라져야 할 비효율'이 된다.

그럼 남는 건 무엇인가.

AI가 대신할 수 없는 것

"이 결과가 우리 상황에 맞는가."

"이 방향이 옳은가."

"이 판단의 책임은 누가 지는가."

AI는 답을 내놓는다. 하지만 그 답을 쓸지 말지 결정하는 것,
그리고 틀렸을 때 책임지는 것은 여전히 사람의 몫이다.

직업은 남는다. 하지만 직업의 속이 바뀐다.
III 왜 중산층이 가장 위험한가

이 변화에서 가장 조용히, 가장 크게 압박받는 사람들이 있다.
중간 어딘가에 있는 우리들이다.

AI 기술을 소유하고 자본을 쌓는 사람들 — 이 변화로 더 커진다
중간 엑셀·보고서·프로세스 관리로 인정받던 우리 — 지금 가장 압박받는 구간
아래 단순 반복 직무 — 자동화 진행 중. 변화가 가시적, 뉴스에도 나온다

"나는 관리자니까 괜찮겠지."

이렇게 생각한다면 한 번 더 생각해봐야 한다.

AI가 가장 잘하는 일이 무엇인지 아는가.
데이터 취합, 일정 조율, 보고서 정리.
중간관리층이 매일 하던 그 일들이다.

엑셀 잘 쓰고, 보고서 깔끔하게 쓰고, 프로세스 꼼꼼히 관리하던 그 능력.
그게 지금 AI의 기본 사양이 됐다.

우리가 인정받던 평범한 유능함이 평범함의 기준에서 밀려나고 있다.

위에서 눌리고, 아래에서 쫓긴다.
중산층이 불안한 건 기분의 문제가 아니다. 위치의 문제다.
IV 그래서 나는 지금 어디에 서 있는가

나는 이 글을 쓰면서 계속 스스로에게 묻는다.

나는 AI를 도구로 쓰고 있는가, 아니면 AI가 하지 못하는 것만 간신히 붙들고 있는가.
내 업무 중에서 AI가 대신할 수 없는 부분은 실제로 무엇인가.
나는 지금 김 대리 쪽으로 가고 있는가, 아니면 김 대리에게 자리를 내주는 쪽으로 가고 있는가.

답을 내놓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이 질문을 피하는 것과 불편하게 마주하는 것 사이에는
이미 방향의 차이가 생기고 있다.

특이점은 아직 오지 않았다.
그런데 내 책상은 이미 조금씩 좁아지고 있다.

책상이 좁아졌다는 건
누군가가 이미 더 넓게 쓰고 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선택은 결국 하나다.

책상이 좁아졌다고 불평할 것인가,
아니면 나도 도구를 집어 들 것인가.

AI는 이미 일하고 있다.
김 대리도 이미 움직이고 있다.

이제 남은 건 내가 언제 움직일 것인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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