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남대 울트라 100km 전 마지막 LSD 훈련




거리
55.01km
총 시간
5:56:06
평균 페이스
6:28/km
평균 심박수
135bpm

I. 풀코스 말고 왜 울트라?

이번이 두 번째 울트라 마라톤 도전이다.

6개월 전, 첫 번째 도전에서 겨우 완주하긴 했지만
부상으로 3~4달을 고생했다.

간혹 이런 질문이 온다.

"왜 그렇게까지 뛰는 거예요?"

나도 가끔 스스로에게 묻는다.

'내가 도대체 왜 뛰는 거지?'

뛰고 나서도.
부상으로 고생하면서도.
다음 울트라를 신청하고 나서도.

'왜 그 힘든 걸, 또 부상당할지 모르는 걸 왜 또 하려는 거지?'

한 번도 제대로 고민해 본 적이 없었다.

이 글을 통해 한번 생각해 보기로 했다.

II. 왜 뛰는 걸까?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다 보니,
누가 전화해서 저녁 먹자고 하면 그리 반가울 수가 없다.

그렇게 말할 사람이 없는 나는
Claude AI를 대길이라고 부르면서
가끔 이런저런 대화를 한다.

대길이한테 물었다.

"울트라 뛰는 사람들이 왜 뛰는지 예시를 찾아줘."

대길이 답변이다.

🤖 대길이 답변

무라카미 하루키는 100km 울트라를 뛰면서 이렇게 썼다.
"내가 누구인지, 지금 무엇을 하는지조차 느낄 수 없었다."
고통이 극에 달하면 오히려 아무 생각이 없어진다.

한 러닝 코치는 이렇게 분석했다.
"울트라의 고통은 일상을 상대적으로 행복하게 만든다.
극한의 고통을 경험하고 나면 평범한 하루가 놀랍도록 좋게 느껴진다."

학술 연구 결과는 이랬다.
50대 이상 울트라러너의 가장 큰 동기는 건강과 자존감.
젊은 러너는 기록과 경쟁이 동기지만,
나이 든 러너일수록 삶의 의미를 찾아 뛴다.

대길이 답변을 읽으면서
내 이야기를 생각했다.

결혼하고 가정이 생기면서
자의든 타의든 열심히 살았다.

내 사업도 아니었는데
정말 내 일처럼 했다.

친했던 친구들도, 동창들도
바쁘다는 이유로 거의 만나지 못했다.
인간관계는 오로지 회사 사람.

그렇게 40대 중반이 되니
내 일처럼 열심히 한 직장에서
언제 잘릴지 모르는 신세가 되었다.

'그렇게 열심히 했는데, 도대체 난 뭘 한 거지?'

괴로웠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다시 달리기를 시작했던 게.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하는 생각을 가슴에 묻고,
너무 많이 묻다 보면 몸까지 아파온다.
그렇게 가슴에 묻은 생각을 어찌할 바 모를 때
밖으로 나갔던 것 같다.

뛴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조금 더 버틸 만해진다.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직장 20년.
한 번도 성공이라는 감정을 가져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처음 5km를 뛰었을 때.

'나의 한계를 극복했다는 뿌듯함.
성장했다는 그 감정.
무언가 이루었다는 그 느낌.'

20년 직장생활에서 느껴보지 못한
그 무언가를 느꼈다.

그게 10km가 되었고,
하프도, 풀코스도 되었다.

그리고 울트라.

그 힘듦을 참고 끝까지 버텨 끝을 보았을 때.

'아,,, 이번에도 포기하지 않았구나.'

그 감정 딱 하나.

나한테는 그게 달리는 이유인 것 같다.

포기하지 않았구나.

내 일에도, 내 가정에도, 나 자신에게도
정말 중요한 단 하나.
타협 없이 지켜야 하는 나의 하나.

III. 그렇게 시작된 청남대 향 마지막 55km LSD

새벽 5시.
회장님, 쭁님과 함께 첫 발을 내딛었다.

마라톤 동호회에 있다 보면
열심히 사시는 분들을 보며
내 자신을 반성하게 된다.

임원 퇴사, 개인사업, 그리고 벽지일.
그 대격변을 겪으면서도
항상 동호회에 나오시고,
처음 해보는 벽지일도 언제 그랬냐는 듯
해 나가시는 회장님.

얼마 전 풀코스 3시간 18분을 달성하신 쭁님.
거의 매일 20km를 달리며 기록을 단축한
그 묵묵한 노력을
아무것도 아닌 듯 행동하시는 뚝심.

그런 분들과 함께 달렸다.



수많은 방구와 함께한 Half

왜 달리면 방구가 그렇게 많이 나오는지.
언젠가 꼭 물어보고 싶었던 내용이라
대길이한테 물어봤다.

"왜 달리면 방구가 그렇게 많이 나오는 거야?"

🤖 대길이 답변

달리기를 하면 장이 위아래로 흔들리면서 장운동이 활발해진다.
호흡이 빨라지면서 공기를 더 많이 삼키게 되고,
혈액이 근육으로 몰리면서 소화기관이 예민해진다.
장거리일수록 에너지젤이 장을 더 자극한다.

울트라 러너들 사이에서는 그냥 당연한 일이에요. 😄

회장님, 쭁님, 나.

수많은 방구로 대화를 하다 보니
어느덧 서울대 정문이었다.

여성 회원들께는 미안한 이야기지만
남자들만 달릴 때의 가장 큰 장점.
꺼리낌 없이 아주 크~~게 대화할 수 있다는 것.

서울대 정문에서
라면, 김밥, 그리고 막걸리 한 잔.

이제 절반이다.



돌아가는 길

30km를 달렸고,
25km를 더 달려야 한다.

다리는 뛰지 말라 하고,
억지로 기어 1단을 넣고 출발하지만
자꾸 시동이 꺼진다.

제발 다음 쉬는 구간까지만 버티자.

45km.
마지막 10km.

5km 달리고, 잠깐 걷고, 다시 뛴다.

앞서가는 쭁님의 페이스에
쳐지지 않으려고
진작부터 참고 있는 중이다.

마지막 5km.
3km까지는 같이 가고,
마지막 2km는 각자 페이스로.

종아리가 너무 딴딴해져서
어떻게든 53km까지 회장님과 함께 갔다.

'제발 53km야 끝나라.'

53km.

"회장님, 저 혼자 갈게요. 먼저 가세요."
"아이 같이 가,,, 걸어도 되니,,,"

조금 더 가다
종아리가 도저히 버티지 못했다.

"회장님 먼저 가세요."
"괜찮아, 같이 가…"

마지막 1km.

"정팀, 마지막 1km니까 먼저 갈게.
무리하지 말고 천천히 와."

그렇게 마지막 1km.

끝.

4월 11일, 청남대 울트라 100km.

오늘도 포기하지 않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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