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편] AI 시대 4050 직장인 생존법 — 내가 가진 경험으로 작게 시작하는 법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게 있다.
목돈.
우리 같은 직장인은
사업이라고 하면 먼저 돈부터 생각하게 된다.
부모님이 넉넉해서
든든하게 밀어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내 통장에 몇 억이 들어 있는 것도 아니다.
결국 떠오르는 건 뻔하다.
전세금 담보대출.
그런데 거기서 우리는 멈춘다.
그 집은
그냥 자산이 아니기 때문이다.
가족과 내가 머무는 공간이고,
어떻게든 버텨온 삶의 자리이고,
지금까지 직장인으로
안정을 추구하며 살아온 우리에게
도저히 함부로 걸 수 없는 마지막 선이다.
나 또한 그랬다.
절대로 건드리지 않겠다고.
그러면 남는 질문은 하나다.
그럼 뭘 할 수 있을까.
그냥 다니는 직장에
더 최선을 다해야 하나.
그나마 짤리지 않도록.
하지만 그것도 쉽지 않다.
마음이 먼저 다치고,
그러다 보면 몸까지 망가진다.
버텨야 하는 건 알겠는데,
그 버팀이 나를 조금씩 부수는 느낌.
나도 그걸 안다.
그래서 찾게 됐다.
집 건드리지 않고.
대신 몸은 좀 힘들더라도.
내가 가진 현재 자산은 지키면서
작게라도 시작해볼 수 있는 것.
속된 말로
사업하기엔 너무 찌질하고 평범한
나 같은 사람도 시도해볼 수 있는 것.
열심히 하는 힘은 조금 있고,
성실함에는 어느 정도 자신이 있지만,
큰돈은 없는 사람.
안정을 버릴 용기는 아직 없고,
그렇다고 이대로 가만히 있기엔
불안이 너무 커진 사람.
많은 4050이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을 거다.
나도 그중 하나였다.
12편에서
나는 우리 세대가 가진 것들에 대해
한 번 정리한 적이 있다.
현장에서 부딪히며 익힌 감각.
사람을 상대하며 얻은 눈치와 판단.
지옥 같은 순간을 지나오며 생긴 맷집.
가족을 먹여 살리며 버텨온 책임감.
분명 내 안에
쌓인 것이 없지는 않았다.
문제는 다른 데 있었다.
자산이 있다는 건 알겠는데,
정작 중요한 질문 앞에서는
늘 막막했다.
그래서, 그 자산으로 지금 당장 뭘 할 수 있는데.
생각해보면
우리는 평생
회사 안에서 자산을 써왔다.
내 경험도,
내 성실함도,
내 문제 해결 능력도
늘 회사 일 속에서만 작동했다.
그러니 회사 밖으로 나오면
내가 가진 것들이
갑자기 쓸모없어 보이기 시작한다.
쓸모가 없는 게 아니라
써본 적이 없었던 것이다.
나는 그때부터
내가 가진 것들을
하나씩 세상 밖으로 꺼내 보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꺼낸 건
내 업(業)이었다.
20년 넘게
현장 장비를 만져왔다.
고장을 보고,
원인을 찾고,
현장에서 욕도 먹고,
문제를 해결해 왔다.
그때는 몰랐다.
그 곤란했던 순간이
나중에 글감이 될 줄은.
처음에는 그냥 정리해보자는 마음이었다.
현장에서 자주 겪는 문제,
장비가 멈췄을 때 확인해야 할 것들,
실제로 부딪혀봐야 아는 내용들을
하나씩 써보기 시작했다.
그게 기술 블로그가 됐다.
남들에게는
그저 기계 이야기일 수 있다.
하지만 장비가 멈춰
밤새 애를 먹고 있는 누군가에게는
그 글 하나가
절실한 해결책이 될 수도 있다.
그다음에 꺼낸 건
내 현실이었다.
50대 가장으로서 느끼는 불안,
AI 시대에 밀려날지 모른다는 공포,
회사와 가족 사이에서
버텨야 하는 사람의 생각들.
거창한 전문지식이 아니었다.
그냥 내가 살아온 이야기였다.
그 이야기를
이 에세이 시리즈로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또 하나.
달리기였다.
오래도록 혼자 뛰어온 시간,
몸이 무너질까 봐 버티며 달린 날들,
기록과 실패와 다시 시작했던 순간들.
그것도 글이 됐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나는 새로운 인생을 만든 게 아니었다.
그냥 내가 이미 가지고 있던 것들을
다른 방식으로 꺼내 놓기 시작했을 뿐이었다.
글로 쓰는 순간 자산이 된다.
얼마 전
애드센스 화면을 열어봤다.
오늘 수익.
US$0.01
솔직히 말하면
처음엔 허탈했다.
이게 뭐라고.
껌 한 통도 못 사고,
편의점에서 물 한 병도 못 사는 돈.
누가 보면 웃을 숫자다.
이런 말이 나와도 이상하지 않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나는 그 숫자를 한참 바라봤다.
그리고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0.01달러가 더 갑지게 느껴졌는지도 모른다.
왜 그럴까.
| 월급 | $0.01 | |
|---|---|---|
| 기반 | 회사 시스템 | 나 혼자 |
| 고객 | 거래처 | 검색 |
| 영업 | 조직 | 글 한 편 |
| 브랜드 | 회사 이름 | 내 이름 |
| 보호막 | 있음 | 없음 |
그건 돈의 크기 문제가 아니다.
의미의 크기다.
단순한 수익이 아니었다.
내가 가진 자산이
세상과 연결되기 시작했다는
아주 작은 신호였다.
어쩌면 그건
첫 번째 교신이었다.
내가 잠든 사이에도,
내가 회사에서 일하는 사이에도,
어딘가의 누군가가
내 글을 읽고 있다는 증거.
아직은 미미하다.
하지만 분명히
아무것도 아니지는 않다.
생각해보면
우리 세대는 자산이 없었던 게 아니다.
자산은 있었다.
다만
회사 안에 묶여 있었고,
내 이름으로 꺼내 본 적이 없었을 뿐이다.
회사 안에서
내 경험은 회사의 것이었다.
내 판단도,
내 노하우도,
내 성실함도
결국 회사의 성과를 위해 쓰였다.
내 이름으로 정리하고,
내 이름으로 쓰고,
내 이름으로 세상에 내놓는 순간
완전히 다른 의미가 생긴다.
그때부터는
그 경험이 비로소 내 것이 된다.
우리는 자꾸
새로운 기술을 배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배워야 한다.
AI도 익혀야 하고,
도구도 써봐야 하고,
시대 변화도 따라가야 한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필요한 건
내가 이미 가진 것을
어떻게 세상에 보여줄 것인가다.
그래야 반응이 오고,
그래야 데이터가 쌓이고,
그래야 아주 작은 결과라도 생긴다.
그리고 그 작은 결과가
다음 행동을 버티게 해준다.
0.01달러는
큰돈이 아니다.
하지만 방향이 틀리지 않았다는
첫 번째 증명일 수는 있다.
여기까지 와 보니
보이는 것이 하나 더 있다.
시작은 혼자 할 수 있다.
혼자 글을 쓰고,
혼자 공부하고,
혼자 밤을 버티며
하나씩 올려볼 수는 있다.
나도 그렇게 해왔다.
회사 일 끝나고 돌아와
글을 쓰고,
주말에 정리하고,
틈틈이 배우고,
또 다시 써보고.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다른 벽이 보인다.
막막함이다.
내가 잘 가고 있는지
아닌지 모르겠는 시간.
이렇게 혼자서
끝까지 갈 수 있을까
싶은 순간들.
자산을 세상에 꺼내 놓는 것까지는
어떻게든 해볼 수 있다.
하지만 그걸
오래 버티는 건
또 다른 문제다.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능력도, 아이템도 아니라
함께 버틸 사람인지도 모른다.
그 이야기는
다음 글에서 해보려 한다.
먼저 쓰러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