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편] AI 시대, 다시 출근하는 아내의 눈을 차마 보지 못한 나

[17편] AI 시대, 다시 출근하는 아내의 눈을 차마 보지 못한 나
4050 직장인의 AI 시대 생존 질문 · 시리즈 17편 · 버티는 것도 전략이다. 혼자는 못 버틴다.
돌아가신 장모님 이야기를 하나 하려고 한다.

나는 매운 음식을 좋아한다. 장모님은 그걸 아셨다. 그래서 멸치볶음을 하실 때도 청양고추를 넣은 것과 넣지 않은 것, 두 가지를 따로 만들어 놓으셨다. 그렇게 자식보다 사위를 더 챙기던 분이 어느 날 조용히 말씀하셨다.

"와이프 쉬게 해야 하는 거 아니냐?"

그때 첫째는 세 살, 둘째는 갓 태어났고, 아내는 출산휴가 3개월이 끝나면 다시 출근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나는 그때 그냥 이렇게 말했다. "지금 형편이 그래서요."

남자들은 철이 늦게 든다고 한다. 나도 그랬다. 아무 생각이 없었던 거다. 그냥 그렇게 사는 줄 알았다. 조금 철이 든 40대 중반이 되니 그때 장모님께서 오죽했으면 그런 말씀을 하셨을까를 알게 됐다. 그리고 아내가 얼마나 힘들었는지도.

그게 계속 마음에 남았다. 지금도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이번에 직장을 그만뒀을 때 정말 지켜주고 싶었다. 아내가 직장 말고 집에서 생활할 수 있도록. 근데 그렇게 되지 않았다.

I. 버티는 삶은 계속된다

버티는 거, 정말 쉽지 않다. 직장을 다니면서 버티고, 가족을 먹여 살리면서 버티고, 그리고 또 다른 길을 찾아보겠다며 블로그를 하고, 유튜브를 고민하고, AI를 공부하며 또 버틴다.

수많은 사람이 방법을 알려준다. 이렇게 하면 된다, 조회수는 이렇게 올린다, 수익은 이렇게 만든다. 가르쳐줘도 안 한다고. 그 말을 보고 시작한다. 처음에는 괜찮다. 배울 것도 많고, 따라 할 것도 많고, 애드센스 승인까지 나면 희망이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진짜 싸움은 그 다음부터다. 6개월, 1년이 지나도 지지부진하다. 일주일에 두세 번은 꼭 이런 생각이 든다. "정말 이게 가능한가? 이게 맞는 길인가?" 그러다 또 한다. 그러다 또 지친다. 그러다 또 한다. 왜냐하면 노동만 팔아서 사는 삶이 언제까지 가능할지 막막하기 때문이다.

그 절박함이 매일 책상 앞에 앉히지만
마음은 자꾸 야위어만 간다.
II. 현실은 버티는 걸 기다려주지 않는다

얼마 전 아내가 몸이 아파 직장을 그만둔 적이 있었다. 그때 정말 초조했다. 현업 매출은 줄어드는데 생활비는 내가 더 벌어야 하고, 블로그와 유튜브 수익은 그냥 그대로였다. 버티는 게 무섭다는 생각이 처음으로 들었다.

결국 아내가 다시 취직을 했다. 30년 넘게 일한 사람이다. 갑상선 수술 후 아픈 몸을 이끌고 다시 일터로 나갔다. 이번엔 정말 쉬게 해주겠다고 했는데. 1년도 못 가 그 다짐은 무너졌다.

아내가 다시 출근하던 날,
나는 차마 아내의 눈을 똑바로 보지 못했다.
III. 나는 혼자 버틴 게 아니었다

한동안 이런 생각을 했다. 내가 못나서 아내를 고생시키는 거라고.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다른 생각이 들었다. 나는 혼자 버티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가족이 같이 버티고 있었던 거다.

아내는 몸으로 버티고 있었고, 아이들은 아빠의 불안한 눈빛을 모른 척해주며 버티고 있었다. 아내의 복직은 나의 무능이지만, 그 무능만을 탓하기에는 생활이 무너진다. 결국, 아프지만 그렇게 서로를 의지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나도 아내를, 아내도 나를 의지하며
지금을 버틴다.
마무리

버티는 것도 전략이라는 말을 예전에는 이해하지 못했다. 버티는 게 무슨 전략인가 싶었다. 그런데 이제는 조금 알 것 같다. 버틴다는 건 혼자 악으로 견디는 게 아니라, 가장 가까운 사람이 옆에서 같이 버텨주는 상태를 말하는 거였다.

혼자 버티는 건 생각보다 오래 못 간다. 수익도 혼자 만들기 어렵고, 마음도 혼자 지키기 어렵다.

못났지만, 이게 4050 가장의 현실이다.
AI 시대 생존은 무엇을 하느냐의 문제만이 아니라,
누구와 함께 버티느냐의 문제인지도 모른다.
···

장모님 생각이 문득문득 난다.

그리고 죄송스러운 마음도.

다음 편에서는 이 질문을 가져가보겠다.
AI 시대, 우리 세대가 가진 것 —
경험은 정말 무기가 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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